최근 급증한 법인의 고급차 구매 수요
전용 번호판 적용, 7월에서 9월로 왜 연기?
시행도 전에 효과는 미비? 이유는 장기 렌트?
전용번호판 도입 앞두고 대체 무슨 일?
국내 판매된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 대부분은 법인차일 정도로 법인 구매 비중은 높다. 때문에 정부는 일명 ‘무늬만 법인차’를 막기 위해 올 하반기 전용번호판 도입을 예고했다.
그런데 시행을 앞두고 고급차 판매가 많이 늘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고가 법인차의 신규 등록 대수가 10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과연 얼마나 판매된 것일까? 그리고 굳이 번호판을 바꾸려는 이유는 뭘까? 함께 살펴보자.
현재 상황, 법인차 구매 부추기는 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입 승용차 신차 등록 대수는 13만 2013대로 지난해 보다 2.7%(3648대)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고급차 판매는 되레 증가했다. 제조사 별로 살펴보면, 먼저 포르쉐는 올해 상반기 6241대를 판매했다. 이미 역대 연간 최대 판매 기록이었던 지난해 전체 판매 대수(8963대)의 70% 가까운 수준을 달성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을 놓고 봐도 32% 급증했다.
벤틀리와 롤스로이스 역시 증가세다. 이들은 올해 상반기 각각 389대, 156대를 판매하며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24.8% 늘어났다. DS오토모빌은 올해 52대로 전년 동기 대비 18.2% 늘어났다.
슈퍼카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람보르기니는 올해 상반기 182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21.3% 증가한 실적이다. 경쟁 브랜드인 페라리는 지난해 동기 대비 14.8% 증가한 163대가 팔렸다.
업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제도 시행 전까지 법인의 고가 수입차 구매가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번호판 색깔이 바뀐다는 것 외에 현재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라고 하면서, “법인차 혜택이 기존과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 등이 법인차 구매 증가를 부추기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연평균 2.4%씩 증가한 등록 대수
전용 번호판 도입은 고가의 수입차를 법인차로 등록해 사업자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까지 사적 유용을 막기 위함에 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가 이 같은 계획을 밝힌 이유는 법인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 수입차를 인수한 뒤 사적 용도로 활용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적발되고 있어서다.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간 법인차 신규 등록 대수는 연평균 2.4%씩 증가했다. 취득가액이 1억~4억 원 내외인 차량의 71.3%가 법인차였다. 특히 4억 원 초과 차량의 법인 구매 비중은 88.4%에 달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세청은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법인차 사적 유용 등이 의심된다며 관련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한편 시행 시기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서 ‘법인 승용차 전용 번호판 도입 방안’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했다. 당시엔 7월부터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2달 뒤인 9월로 미뤄졌다. 기간이 변동된 이유로는 적용 대상을 조정하게 되면서 예상보다 시행이 다소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차 사적 유용, 해외는 어떨까?
법인차의 사적 사용, 다른 나라는 어떨까? 영국은 법인차량의 사적 사용을 방지하는 데 힘을 쏟는 대신 사적 사용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법인차량은 현물급여로서 직원 급여의 일부로 취급되어 소득세가 부과된다. 따라서 직원이 회사 차량의 사적 사용에 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또한 법인 역시 고용주로서 차량을 제공받는 개인에 대한 국민보험 기여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여기서 현물소득 과세의 특징은 ‘2050년 탄소중립’ 정책에 맞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을수록 조세율이 낮아지도록 설계해, 법인차량 구매 시 친환경 차량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를 살펴보면, 프랑스는 차량 가격과 사용경비를 기준으로 개인적 이득을 측정하여 과세하는 방식을 사용하며, 독일은 차량 가격, 주행거리, 사용경비를 기준으로 하되 각 방식을 보완적으로 사용하여 과세하고 있다.
이와 달리 미국은 법인차 운행 기록을 철저히 하고 있다. 업무용 차량에 대한 세제혜택을 적용할 시 내국세법에 따라 업무용 차량의 비용을 공제받기 위한 정확한 기록이 요구된다. 만약 기록이 없을 경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어떠한 세제혜택도 받을 수가 없다.
또한 차량에 대한 사적 사용의 예시로 통근, 휴가 시 사용, 업무시간 중에 사적 용무를 위한 사용, 배우자에 의한 사용 등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공항이나 기차역을 오가는 통근, 업무 관련 심부름을 위한 운전, 비즈니스를 위한 식사 및 접대를 위한 이동은 업무용 사용으로 간주한다.
이 밖에도 미국 국세청은 고가의 자동차에 대한 감가상각을 제한하기 위해 특별감가상각과 수정가속상각방법을 포함한 총감가상각의 범위를 규정하여 일시적인 세금 차이를 발생시키고 있다.
법인 명의 차량을 구매하는 이유
국내에 등록된 법인차는 구입비, 보험료, 유류비 뿐만 아니라 세금 감면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나라들과 달리 차량 운행 일지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연간 최대 1500만 원의 경비 처리도 가능하다.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 2016년 법인차의 연간 감가상각액 한도 800만 원 제한, 차량 운행 일지 작성 의무화 등을 통해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하지만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세금 누수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전용 번호판 부착’, 효과 반감된다?
국내 수입차 업계는 연두색 번호판 제도 시행을 놓고 무덤덤한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연두색 번호판이 도입되고 나면 럭셔리카 수요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는 있다”며 “하지만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장기 렌트(통상 2~5년간 빌려서 쓰는 차)는 빼고 리스(lease·임대) 및 구매차만 포함해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국토부는 법인 장기 렌터카는 이미 ‘허, 하, 호’ 번호판으로 일반 차와 구분돼 연두색 번호판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장기 렌트와 리스가 비슷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운영비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보니 법인이 세금을 절약할 목적으로 많이 활용한다.
장기 렌트는 리스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 구매와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리스와 다르게 장기 렌트는 취득세와 공채 매입, 보유세 등을 감면받는다. 예를 들어 배기량 2000㏄ 쏘나타의 경우 4년간 리스하면 배기량 1㏄당 최대 140원과 차 가격의 7%를 보유세와 취득세로 내고 공채를 매입해야 한다. 같은 기간 렌트를 하면 1㏄당 19원의 보유세, 차 가격의 4%만 취득세로 내면 된다. 구매나 리스가 438만 원의 세금을 낼 때, 장기 렌트는 4분의 1수준인 123만 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차가 비쌀수록 줄어드는 세금도 크다.
또 연두색 번호판을 도입하는 이유가 법인 차를 개인 용도로 쓰는지 많은 사람이 쉽게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인데, 개인 렌트와 법인 렌트는 구분이 안돼 법인차를 유용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연두색 번호판 도입 취지를 고려하면 법인용 장기 렌터카를 구분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에디터 한마디
모든 법인차가 사적인 용도로 사용되진 않는다. 다만, 탈세를 비롯한 여러 이슈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법인차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진 것 역시 분명하다. 때문에 정부가 정말 법인차의 사적 이용을 막으려 한다면, 추가 법안 발의 등 좀 더 명확한 기준들이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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