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버릴게 없다. 배터리도 마찬가지
전기차 배터리는 귀하다. 제조사마다 주력 전기차로 두는 준중형~중형급 모델에는 2천만 원어치 배터리팩이 장착된다. 희토류에 첨단 기술이 집약된 형태여서 매우 비싸다.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지만, 폐차를 할 때가 되면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환경오염 때문이다.
배터리를 구성하는 성분들은 땅을 오염시켜 죽음의 땅으로 만든다. 문제는 그동안 배터리를 처리하는 기술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 1세대 전기차의 폐차 시기가 도래하면서 폐 배터리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유럽을 비롯해 주요 국가에서는 폐 배터리에서 추출한 주요 성분을 재활용하는 규정을 내걸었다. 제조사 입장에선 난감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배터리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처리하는 기술은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전기차 개발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다행히 폭스바겐을 비롯해 GM, 현대차 등 주요 제조사들은 나름의 돌파구를 마련 중이다.
배터리 갈아끼워, 수명 연장
버려진 전기차 배터리는 재생산, 재활용, 재사용 중 한 가지 방법으로 재활용된다.
재생산 방법은 애플의 리퍼폰과 같은 개념이다. 컨디션이 나쁜 배터리 셀이나 모듈만 교환해 수명연장을 꾀한다. 전기차는 충전과 방전이 상당히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에 배터리 수명 역시 짧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의 개입 덕분에 배터리 셀 당 가해지는 부하를 최대한 분산시켜, 내구성을 보호한다.
실제로, 30만~50만 km 넘게 주행한 전기차의 배터리의 컨디션이 95% 이상인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소개되곤 한다. 따라서 일부 교환 방식을 통해 배터리 가격을 최대한 줄여, 전기차 구매 허들을 낮추는데 도움이된다. 이 방법은 이론상 배터리 팩 가격을 50% 밑으로 내릴 수 있다.
완전히 갈아서 원자재 추출
배터리 재활용의 경우, 돼지나 소를 발골하듯 부품 별로 완전히 해체한다. 그 다음 배터리 부분은 가루로 만들어, 재활용 과정을 거친다. 이 방식은 주로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NCM)에 사용되며,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등 양극재와 음극재를 구성하는 원료를 추출한다.
과정이 복잡하고, 순도 높은 성분을 추출하는 방법이 어렵지만 제조사에서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하고, 원자재 수입에 인한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 이 분야는 미국과 한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수준 높은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원자재를 무기로 활용할 것에 대비할 여지를 남긴다.
전기차 외 다른 용도로 재사용
배터리 재사용 방법의 경우, 가장 부담이 적고 범용성이 보장된다. 순간적으로 충전과 방전이 이루어지는 전기차 외 에너지 저장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주로 풍력, 태양광 등 친환경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저장하거나 가정용 전력 공급장치로 활용한다. 이를 ESS(Energy Storage System)라 부르기도 한다.
이 방법은 배터리 성능이 감소해도 여러개를 묶어 놓기 때문에 저장용으로는 충분하다. 특히 친환경 발전소의 경우 전력 수급이 일정하지 않은데, ESS에 생산 된 전기를 저장해 기복없이 동일한 전력을 지역사회에 제공할 수 있다.
ESS용 폐 배터리는 성능이 70%~80% 만 돼도 충분하다. 발전소 에너지 저장 용도로 사용하면 10년 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 사례가 있는 만큼,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상용화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에디터 한마디
2025년은 폐 배터리가 급증하는 첫 시즌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0년대 초반부터 보급된 1세대 전기차 대부분의 수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제조사들은 고철상에서 고철을 수거하듯, 폐 배터리를 앞다퉈 수거해,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에너지 시장조사기관 SNE 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30년 12조 원, 2040년 87조 원에 이르는 거대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생산된 배터리는 니켈 비중이 상당히 높은 ‘하이니켈 배터리’이거나 알루미늄이 섞인 NCMA, NCA 배터리, 리튬 인산철 배터리이며, 대용량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수 많은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광산에서 원자재를 캐고, 부품을 새로 찍어내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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